자레브로드 공동체: 총원지구

1914년, 수녀회는 교육을 통해 독일 정착민을 돕기 위해 불가리아 자레브로드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공산 정권하에서는 정신 병원에서 봉사하였다. 오늘날 수녀들은 사회사목과 교리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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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레브로드 새소식

자레브로드 공동체

1914년 1월 14일 4명의 독일 수녀들이 임시로 만든 교실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첫 영성체 교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때문에 1918년에 일시적으로 이곳 선교지의 문을 닫아야만 했었지만 다시 돌아온 수녀들의 큰 열정으로 선교를 계속하여 사도직이 크게 번성하였고, 공동체도 성장하였다.

소련 군대가 불가리아에 진주한 1944년부터 수녀원에 험난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13명의 독일 수녀들이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고, 남아 있는 12명의 독일 수녀들은 일년 동안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이리하여 툿찡 모원은 수녀들을 모두 독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두 명의 수녀들이 남아 불가리아 수녀들과 같이 있었으며 공산정권이 40년 이상 철저한 종교탄압 속에서도 하느님의 충실하심으로 의지하여 그들의 선교를 계속하였다. 정부는 수녀들에게 수녀원과 그 주변에서만 수도복을 입는 것을 허용하였다. 수녀들이 하는 일을 병원 직원들은 매우 고마워했고, 일반인들도 수녀들을 매우 존경하며 귀하게 여기고 있다.

역사

1878년 터키 정권으로부터 독립한 불가리아의 삭스-코부르그(Saxe-Coburg)의 페르디난드 왕은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기 위해 독일 농부들과 경작인들을 초청하였다. 이 농부들 중 일부는 오늘날의 자레브로드인 엔제(Endje)에 정착하였다.

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 가운데 독일 고난회 소속 프란츠 크링스 신부가 있었다. 그는 1910년에 성당을 지었는데, 그곳의 독일 어린이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크링스 신부는 독일 툿찡 모원에 자신을 도와줄 수녀들을 요청하였다.

이리하여 1914년 1월 14일 4명의 독일 수녀들이 왔고, 수녀들은 즉시 임시로 만든 교실에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첫 영성체 교리를 시작하였다. 1명의 수녀는 의료 사도직에, 또 다른 수녀는 성당에서 사용하는 수를 놓은 성작수건, 성작덮개, 제대보와 제의 등을 만들었다.

우리 독일 수녀들이 금잔화와 백합꽃 기름으로 만든 피부 연고제품은 효험이 좋아서 불가리아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까지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이 연고 외에도 다른 약초들로 병을 치료하였다.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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